독 같은 배려 잔뜩 한 움큼 사랑은 쉬운 문제가 아니에요

어릴 적 (여기서 어릴 적은 엄마가 사 주는 보석캔디를 입에 물며 행복했던 날로 칭한다)엔 지금의 나를 보며
"엄마, 나는 저런 인생 안 살 거야! 공부 열심히 할게." 이랬던 적도 있더랜다. 
그 말을 들은 지금의 나는 그런 어리기만 한 년을 비웃었는데, 그땐 이유를 알지 못했다.

어릴 땐 특별한 사람이 꿈이었던 나는, 어느새 평범함이 꿈이 되었다.
그게 꿈이 된 이유는 너무도 조촐했는데, 공부에 나름 흥미를 붙였던 것이 완전히 떨어져서였다. 물론 떨어진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여자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호탕하게 엄마에게 의사가 꿈이고 문과로 가면 판검사가 꿈이라는 어렸었던 나는 내 정체성을 깨달은 후 사회가 손가락질 하는 내 성 정체정을 가지곤 그런 직업을 못 가질 것이라 예상했다.

고등학교 땐 그저 죽은 듯이 살고 싶었다. 아니, 스스로 죽어 있었다.
하는 것이라곤 수업 시간에 자다가 문학 관련 시간에만 벌떡 일어나 수업을 듣고, 집에 가기 전 도서관에 들려 책을 빌리곤 했다. 그리고 유리 파편이 널려져 있는 좁은 거실을 힘들게 피해 방을 잠그고는 나만의 공간에서 책을 읽으면서 지냈다.
그러다 학교에서 '대단한 년'으로 유명한 걔를 만나게 되었다. 말만 대단하다로 순화한 거지 그년은 씨발 년이었다, 인생의 둘도 없을 좆같은 년, 이상한 년.
걘 나와 달리 벽장 속에 살지 않았다. 걔의 반반한 외모에 한 순간에 반한 남자들의 고백을 당당히 자신은 너 같은 남자보단 예쁜 여자가 좋다고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남자들은 예쁜 년이 레즈비언이라고 하자 마음이 동했는지 한 번만 자자며 요구를 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그런 소문을 듣고 혹여나 나도 들키진 않을까 지속되는 호기심을 죽이곤 걔를 피하고 있었다. 그러다 1학년 2학기 천고마비의 계절이라지만 막상 나는 나가서 마음껏 보지도 못하는 그 계절, 야자가 끝나고 집에 가는 내 손을 걔가 꽉 잡았다. 내가 빠져나가는 것도 아닌데 뭐가 불안한지 아무 말 않고 내 손만 잡고 걸었던 걔는 내가 입을 떼려고 하자 먼저 입을 열었다.
"너 왜 나 피해? 내가 너 좋아하는 거 박상현 걔가 말하디?"
놀라서 고개를 휙 돌리자 걔보다 작지만 보통 여자보다는 큰 키에 속하는 내 시야에 보였던 건 평소와 같은 가로등과 드문드문 불 켜진 낡은 빌라들과 인도 옆 도로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아니었다. 자기가 말하고도 어쩔 줄 몰라 토끼 같은 앞니로 잘근잘근 씹는 도톰한 입술과, 어머님이 뱃속에 있을 때 태교를 무엇으로 했는지 아님 어머님도 피부가 하얀 건지 궁금함을 품게 하는 피부 그리고 눈. 내가 반했던 그 여우 같은, 언행만 보면 천박하던 모습과 달리 우리가 멋쩍게 보고 있는 밤하늘과 같이 깊은 눈. 그것들이 내 시야에 들어오자 나는 그제야 내가 걔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인정해야 됐다. 인정과 동시 걔의 입술을 포갠 내 입에서는 우린 앞으로 어떻게 될까라는 물음만이 가득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잘 사는 부모에게서 나온 걔와 나름 가정사정은 평범한 부모에게서 나온 나는 미디어가 강조하는 청년의 꿈보다 먹고 살기 위해 비좁은 옥탑방을 선택할 정도로 돈이 좆도 없었다.
죽은 새끼들이 기어나올 것 같던 폐가는 필요한 물품이 채워지니 이제야 사람 사는 곳 같았다. 아직도 그 벌레들이 생각난다며 몇 주 먹는 것을 줄이던 식신은 어느새 보기 좋게 마름에서 너무 말랐다로 몸이 변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걔가 벌레가 무서워서 식음을 전폐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왜냐면 걔는 정리를 하며 우연히 본 자신의 그림을 한참동안 멍하니 보고 있는 것과 벌레를 아무렇지 않게 때려 잡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동거하면서 걔의 많은 행동과 생각을 예전보다 더욱 많이 볼 수 있었지만 그 중 지금까지 눈치도 못 챈 행동 중 하나는, 바로 걔가 매일 아침마다 유서를 쓰는 것이었다.
처음엔 매일 울고, 지랄도 하고, 집도 나가고, 심지어 화도 냈다.하지만 과거 '대단한 년'이었던 걔는 아무렇지 않게 아침마다 유서 쓰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삼 년을 사니 어느새 역설적이지만 걔의 일상에서 유서 쓰기가 빠지면 혹여나 자살할까 내가 더 불안했다.

우리는 돈이 뭣도 없어도 서로의 생일은 챙겼는데, 그날은 유독 존나게 추운 1 월 3 일이었다. 돈도 없는 우리는 초코파이를에 촛불을 꽂으며 케이크를 대신했었다. 그리고 선물로 걔가 장바구니에 넣고만 있던 시계를 선물하자 걔는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흐뭇해진 나를 보며 입을 맞추곤 어디 갈 곳이 있으니 나중에 보자며 동거 3 년 동안 별로 안 보여 줬던 미소를 보여 준 걔는 오후 9 시에도 여전한 그 미소로 나를 반겼다. 
비록 영정사진이었지만.

고딩 때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걔의 부모님의 모습과, 결국 내 자리가 아닌 상주 자리가 보였다. 나는 '친구'이기에 없는 형편에 부조금을 넣었다.
걔를 닮은 어머니는 나를 알아보셨고 내 손에 차가운 금속 물체를 주셨는데 그것은 내가 오늘 준 시계였다. 그녀는 나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유품들을 줄 수 있냐며 걔와 가족들의 집 주소를 주었다. 나와 사는 집이 아닌, 걔의 진짜 집 주소를. 

장례식장엔 멋진 초상화들이 왔다. 상주를 위로하는 초상화, 그녀의 소문을 소문내는 초상화, 역겹게 우는 초상화.
초상화들은 감성을 가진 척했고, 슬픔에 빠진 가족들과 달리 난 어릴 때부터 모든지 비꼬면서 보던 년이었다. 그런 내 눈에 거슬리는 건 당연했었다.

아무리 좆같은 년이라도, 죽은 년이었다.
그들에게는 그저 개미 한 마리, 아니, 그냥 뉴스에 흔히나오는 청년 실업자의 결말이었겠지.
그들은 각자 자리에에 가 '노력'을 씨불일 것이다. 노력했으면 저렇게 비참하게 뒈지진 않았겠지! 우린 열심히 살았어!라 안주할 것이다.
누군가에겐 세상이 무너졌지만, 그들은 한 편의 퇴폐적인 단편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상영관은 많았고, 자신이 예약한 상영관에서 영화를 탄생시킨 감독들을 위해 울고, 속상한 척, 이것을 보는 모두를 위한 척 위로하는 연기를 펼치고 나가는 것이다.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차마 그들 앞에서 뱉을 수 없는 침을 영화관 앞에서 뱉고 자리를 떴었다.
급하게 나와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걷다 문뜩 고개를 쳐들어 걔의 눈을 올려다봤다. 그러다 손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에 주먹을 피자 잔뜩 깨진 시계 속 오후 여섯 시에 멈춰져 있는 나와 걔를 멍하니 보았다.

좆같지만 좋아하던 년이었다. 그런 년과 살던 집이었다. 이 집에서 우린 이뤄지지 않을 사랑을 씨발스럽게 속삭였었다.
역겹지만 그게 사실이고 나만 남겨졌다. 분명 시작은 같이 했는데 모든 정리는 나 혼자 오롯이 해야만 했다.
걔의 매일 '자살'을 준비하던 모습 덕에 슬프진 않았다. 그저 당황스럽고, 음, 그래. 안쓰러웠다.
그렇지만 차마 집에 들어갈 순 없어 1 년 만에 보는 친구를 불러 술을 마시곤, 그 친구 집에서 죽었다.
눈치를 주는 친구를 무시한채 친구 집에서 술을 마신 지 한 일주일이 지났나? 겨우겨우 집에 들어갔다. 동네 어른들은 위로하지만 가뜩이나 싼 집값과 땅값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는 눈초리였다.
저 눈초리가 웃겼을까, 비참했을까 걔는?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생각만 알 수 없는 게 아니라 걔를 알 수가 없었다.

집에 들어가자 걔가 나간 그대로 놓여 있는 것들이 보였다. 이 놓여 있는 것들은 걔의 부모님께 돌아가야 한다.
자신을 태어나게 한 존재이기에, 죽을 때도 가야 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세상에게 '빌린 덤'이고, 걔의 호적 주인은 부모였다. 난, 그냥 가난한 친구였다.

먼저, 옷과 신발, 화장품을 정리했다. 많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많진 않았다.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나에게 많은 것을 주지 않았던 걔의 모습이 여기에도 투영되었다.
그 다음 걔를 위해 슬퍼할 그녀의 부모를 위해 일기와 유서장 모음들을 빼놓고 모든 것을 상자 안에 정리했었다.
짐은 총 세 박스.(사실 마지막 박스는 다 차지도 않고 신발 한 켤레가 끝이었다.) 짐과 같이 산 년도는 비례했다.  비참한 현실은 상자에게도 비참함을 끼쳤다.
상자 속 걔는 나에게 넌 아무것도 아닌 년이었다고 왜 혼자 둘의 미래를 그렸냐며 비웃었다.

이 동네로 이사를 온 후 처음으로 택시를 탔다. 여기도 택시가 다니는구나 싶을 정도로 외진 동네이지만 사람은 살고, 세계는 돌아갔다. 이것에 적응하지 못 하는 년이 병신이었다.
걔네 집은 한강이 보이는 전경 좋은 집이었다. 아파트는 으리으리했고, 빗자루처럼 다 상해빠진 노란색의 머리를 가진 년은 그저 품격 없게 보일 정도로 멋있었다.
이게 차이였다. 결국 태어날 때부터 난 걔의 옆자리에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머님은 모든 손님에게 그렇듯 미소를 띄우곤 반갑게 날 맞이했다. 
걔의 옷과 신발, 화장품, 세 상자뿐인 짐들.
이것이 자신을 낳아 준 부모에게 자식이 물려 주는 것들이었다. 부모는 사랑을 주었고, 그녀는 허물을 주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고등학생 때 그 애가 널 '베프'라고 이야기 많이 했다고, 마지막까지 좋은 '친구'라서 고맙다고, 아마 걔 인생의 최초, 최후의 '친구'일 거라고 했다.
내가 꼬인 건지 그녀가 노린 건지 모르겠지만 배려깊게 나불대는 주둥이를 정중하게 때리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나는 당신 딸의 사랑이었어요, 어쩌면 그녀는 내 전부였어요'
전하지 못할 말을 웃음으로 쓰게 삼켰다. 어릴 적 엄마가 먹인 알약을 처음 먹을 때 같았다.

마지막까지 그 애의 '친구'는 자신의 딸과 같다며 힘들 때 연락하라는 그 여자의 표정엔 진심이 담겼다. 차 한 잔 마시고 가라며 억지로 들어간 거실에는 그녀와 닮은 점이 없는 젊은 남자가 멍하니 걔의 사진만 보고 있었다. 감히 뭔데 사진을 봐? 차마 뱉지 못한 쓴소리를 입안 가득 삼키고 얘기 많이 들었다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 남자도 당황을 애써 표정에서 지우며 미소를 짓고는 방으로 떠났다. 차를 내오고는 자연스레 앉는 그녀의 뒤로 성경이 꽂혀져 있는 장식장이 보였다. 차가 달지 않냐며 걔도 좋아했다는 그녀의 소리는 집중이 되지 않았다. 무덤에서 여유롭게 차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차를 다 마시고 여기완 어울리지 않는 꼬질꼬질한 신발을 신는 나를 보는 그녀는 마지막까지 그 애의 '친구'는 자신의 딸과 같다며 힘들 때 연락하라는 그 여자의 표정엔 진심이 담겼다. 또한 친구를 강조하는 그녀의 말에는 강단이 있었다.
악의 없는 개 같은 모습이 엄마를 닮았었구나, 너는.
걔가 들으면 엄마는 뭐라고 해도 자기는 건들지 말라며 뭐라고 하겠지만. 음, 그래. 나도 힘드니까 걔는 이해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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