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같은 배려 잔뜩 두 움큼 사랑은 쉬운 문제가 아니에요

그렇게 걔 존재를 돌려 주고 집에 돌아오면서 본 풍경은 아이러니하게도 예뻤다. 해는 떴다, 것도 밝게.
우리가 나눴던 달콤한 솜사탕은 바람에 닿은 듯 사라져가는데 모두들 살아갔다. 물론 산 사람은 살아야 돼 나도 알고 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가스불을 계속 켜 죽자, 목을 매달자, 손을 긋자, 그냥 떨어지자. 계속된 고통을 끝내려는 회피도 난 하지 못 한 상태로 그냥 칼을 떨어뜨릴 뿐이었다. 인정해야만 했다.
"난 그냥 존나게 겁쟁이야"
걔가 죽어도 삶을 계속해서 반죽 밀 듯이 아슬아슬 이어가는 것도 나에겐 간절했다. 두 손을 모으고 좆같다 느꼈던 신에게 빌고 싶었다, 제발 살려 주라고.

죽을 용기도 없는 년은 가만히 누워 멍만 때렸다. 눈을 감았다 뜨면 느껴지는 왼손의 저리지 않는 느낌, 쌀쌀한 공기 속 쓸쓸한 우리 커플링, 날 찌르던 시계. 
궁금해졌다. 넌, 넌 자살인 걸까? 보통 사람이었다면 당연히 자살이 아니라고 생각했겠지만, 너라면. 쓸모없는 배려가 넘치는 너라면 자신을 보내 준 하늘을 비웃으며 다시 하늘로 돌아갔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공상만 가득했던 하루, 드디어 미친 건지 걔의 얼굴이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걔가.
자신이 안 보이냐며 울부짖는 넌 허상이었다. 걔가 죽고 미친 게 분명했다. 어차피 시도하지도 않을 자살을 위해 걸렸던 벽시계를 내리고는 그 못에 밧줄을 걸자 허상은 원망스럽다는 듯, 어쩌면 기대하는 듯 날 쳐다봤다.
그 허상 때문에 미칠 것 같아 밖을 돌아다녔지만 걔는 끝까지 쫓아왔다. 정말 내가 걔를 많이 좋아했는지 그 허상은 걔처럼 굴었다. 돈도 없으면서 술은 왜 그렇게 사냐며 잔소리 하는 걔는, 그 허상은.

내가 그 존재를 믿기 시작한 건 2 월 17 일 18 살 생일부터 늘상 축하해 줬던 걔 없이 보냈던 생일이었다. 내가 만들어낸 그 허상은 내 생일을 축하해 줬고, 사랑한다 속삭였다. 그렇게 난 허상을 귀신이든 정말 걔든 아님 정말 허상이든 믿고 싶었다. 아니, 믿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동거는 나름 행복했다. 비록 느껴지지 않는 무게지만 왼팔은 드디어 저렸고 내 심장도 다시 뛰기 시작했다. 알바가 끝나고 초콜릿을 보며 잔뜩 좋아하다가 먹지도 못 하는 것을 알고는 쓸쓸하게 주변만 빙빙 도는 그 모습은, 걔의 죽음을 다시 상기시켰다.

"네가 야자 때 심심하다고 내 노트에 적었던 그 소설 멘트 구상 있잖아, 나 사실 그거 보고 너한테 완전 반했어."
어느날 똑같은 밤에 뜬금없이 시작된 걔의 과거 상기는 그날부터 서로의 진심을 말할 수 있는계기가 되었다. 이미 죽어가는 세상 속 묻힌 나에게 당신만이 내 존재 유무의 갈림길이니 난 그냥 그대만 따르겠다. 그 멘트는 단순한 소설이 아닌 걔한테 하는 애원이었다. 다시 속삭이자 즐겁게 웃는 그 미소는 모르고 있을 거다, 걔가 죽었을 때 차마 뱉을 수 없지만 뱉고 싶었던 말이었음을.

두 명 식사비가 한 명으로 줄어 좋겠다는 걔의 날 잔뜩 선 말에 그냥 웃으며 네 식비는 세 명이었다고 3 분의 1로 줄은 거라고 받아칠 수 있는 봄이 시작된 날, 메모를 적게 만들은 걔의 말은 날 울게 만들었다.
"나 사실 네가 가족들한테 당한 아픔 말할 때, 네가 담담하게 뱉었던 네 오빠 대신 네가 죽어야 됐다고 했던 말 있잖아. 나 그 말 들을 때 들었던 생각은 안쓰럽다도 있지만 네가 안 죽어 다행이다가 더 컸어. 나 진짜 이기적이지?"
이기적이지 않아, 그렇지 않아. 사실 난 그 말을 기대했다. 딸 낳아야 아무짝에 쓸모도 없다는 친가의 말에 웃으며 넘겼던 엄마와 아빠가 모든 사랑을 독차지했던 오빠가 죽었을 때, 친가로부터 네가 죽어야지 왜 너만 살아 있냐며 울부짖는 말을 내가 듣고 있을 때, 나에게 다가와 속삭여 주기를 바랐다. '내 소중한 딸, 그래도 너라도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라고. 그 말은 나를 10 살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고작 네가 뭐라고, 네가 뭘 안다고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덤덤하게 날 다시 살렸다. 10 살의 눈치를 보느라 소리도 못 내며 우는 나를 달래며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랬을 거라며 꼬마를 달래는 네 모습은 환영이 아니었다, 아니어야만 했다.

그 대화가 끝나고 다음날, 오랜만에 엄마를 찾아갔다. 택배인 줄 알고 문을 열은 엄마의 표정은 내가 올 곳이 아닌데 왜 왔냐며 묻고 있었다. 그냥, 그냥 엄마가 보고 싶어서요. 못 들을 거라도 들은 것처럼 엄마는 떨떠름하게 날 안으로 안내했다. 
"내 방, 치우셨네요."
그리고 오빠 방은 여전히 14 살 소년의 방이네요. 오빠 옆 방 죄책감에 느껴 자살이라도 하라는 듯이 오빠가 죽은 후에도 자리했던 내 방은 이미 깔끔하게 정리됐다. 책방이 필요했는데 나가서 다행이라는 엄마의 말은 분명 죽은 건 오빤데 내 죽음을 실감나게 했다. 넌 왜 이럴 때 안 따라오니. 이미 죽어서 없는 게 당연한데 옆에 따라 붙는 게 당연해진 걔의 존재를 찾던 나는 세 개 뿐인 의자를 끌어 앉았다. 

조개 넣고 끓인 된장찌개. 어릴 때 해감 안 된 조개를 먹은 후 가리는 나와 달리 엄마가 주는 거라면 웃으며 잘 먹던 오빠가 좋아했던 조개 넣고 끓인 된장찌개. 최후의 만찬이라도 먹는 듯 천천히 떨며 억지로 조개를 씹었다. 
고개를 들자 멍하니 우리 어릴 때 찍었던, 아니지. 오빠 어릴 때 찍었던 내가 낑긴 가족 단체 사진을 보고 있었다. 엄마, 난 엄마에게 어떤 자식인가요. 도대체, 도대체 어떻길래. 차마 뱉지 못한 말을 쑤셔넣고 엄마를 위해 억지로 또 웃었다.
"가정주부 힘드시죠? 아버지만 없었음 엄마도 이렇게 외롭진 않았겠죠?"
넌 왜 오빠 생일 전 날에 와서 기분을 망치냐며, 이래서 네가 오빠처럼 사랑을 못 받은 거라는 엄마의 그렇다는 긍정을 담은 대답은 오히려 날 편하게 만들었다. 야, 난 아무래도 너한테 기대는 게 세상 이치에 맞았어. 오히려 내 세상은 걔임을 알려 주는 말, 그리고 아버지 때문에 엄마가 변한 거라고 착각 속에서 다시 살 수 있게 해 주는 여지. 
그동안 엄마 생일에 주고 싶었던 신발을 버리듯 주고는 뛰쳐 나왔다. 엄마, 도망가세요. 멀리, 아빠가 안 보일 정도로.
집에 오자 어땠냐는 걔의 말에 웃으며 괜찮았다 했다.

"봐, 나 덕분에 어머니랑 사이도 풀었잖아. 난 진짜 살아서도 죽어서도 널 살게 하나 봐."
네 존재 유무가 내 존재 유무인걸. 차마 뱉지 못한 말을 달게 삼키며 가득 껴안았다. 휘어져 올라간 눈꼬리가 예뻤다. 거기 눈물이 달리는 건 내가 참지 못 할 정도로.

어쩌면 걔가 죽은 건 서로에게 다행일지 몰랐다. 이것으로 메모가 끝냈는데 아마 적고 싶은 말은 이거였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 세상 때문에 힘들어 울기 전 네가 죽어 너무 비극적이지만 그래도 희극으로 치부할 수 있다'고.
잠들 수도 없으면서 자는 척하는 게 정말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귀신 같았다. 네가 환영이라면, 난 어떻게 버틸까? 버텨야지, 견뎌야지. 나도 알지만 벌써부터 두려웠다. 널 만나지 않고 살았던 시간이 더 긴데, 이상하게도 난 네가 없는 날들이 낯설었다. 사람이란 적응의 동물이고, 그게 나를 더 힘들게 한다.

다음날, 오랜만에 아빠를 만나고 싶었다. 당신 아들 생일에 당신 아들이 목숨 받친 당신 아내 딸을 보면 뭐라고 하실 건가요, 아버지? 괜히 떨렸다. 걔는 내가 오빠가 그리워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혼자 하는 오빠 생일 축하도 안 말렸지. 
사실 어릴 적 난 오빠가 더 미웠다. 할머니한테도 할아버지한테도 그냥 가족 모두에게 사랑을 독차지 하면서 나에겐 무서울 정도로 관심도 안 주던, 착했던 바보 같은 오빠. 내가 당신의 생명을 먹고 자라났다고 욕을 먹을 때 어땠을까. 오빠는 하나뿐인 동생이 안쓰러웠을까, 우스웠을까?

오빠는 생각해 보면 무서울 정도로 자기 이익을 잘 찾았고, 사랑을 받을 줄 알았다. 눈치는 보이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꼭 하는 나와는 달리 오빠는 그 어린 나이에도 무조건 비위를 맞췄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네가 잘하고 있는 거라고 했다. 그래서 더 미웠다. 그냥 지라고 하지, 한 번만 비위 맞추라고 하지. 그러면, 그러면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멍하니 태워져가는 어린 나를 보며 생각하니 이미 촛농은 떨어지려고 했다. 급히 끄고 눈을 감았다. 사진은 필요없다. 그 역겨운 얼굴은 생각만 해도 띡 나왔으니.

오늘따라 조용히 날 안아주기만 하는 걔에게 드디어 내가 걔한테 반한 이유를 찾았다. 살아 있을 땐 자기가 왜 좋냐는 질문에 사실 나도 몰라서 너 예뻐서, 그냥 다. 이런 뻔한 대답만 했는데 드디어 알았다. 기댈 수 있다, 어리게 굴 수 있다. 사실 지쳤던 것이었다, 난.

걔에게 입을 맞추고 가만히 있으면, 신기하게도 숨을 쉰다는 게 그제야 느껴졌다. 살아 있지 않은 대상을 사랑할 수 있나요, 선생님? 의사한테 물어야 할지 어린 나로 돌아가 선생님을 그리고 그 존재에게 물어야 할지 몰랐다. 선생님, 제가 미친 건가요? 제가 죽은 사람을 그리고는 사랑해요. 저 미친 거죠? 의사한테 들어야 할지 어린 나로 돌아가 엄마를 그리곤 그 존재에게 들어야 할지 몰랐다. 그냥 꽉 껴안았다.
"너 미쳤어? 나 진짜 숨 막혀." 
"너 숨 안 쉬면서 무슨 숨이 막혀?"
원했던 질문 답은 아니지만 이것도 대답으로 치고 싶었다. 원래 품위란 없고 공상만 하는 나에게 미친 거란 신의 축복으로 칠 수 있었다. 비록, 내 신은 걔지만.

여기서 메모가 끝나 있었다. 난 하겠다고 하는 일을 끝내 마친 적이 없으니 납득이 갔다. 설마 그래도 이게 끝일까 싶었던 순간, 신기하게도 메모 한 장이 굴러 떨어졌다. 날짜와 내용을 보니 걔네 어머니를 만났던 날인 것 같았다. 이날 죽은 후 처음으로 걔와 싸웠다. 그리고 걔는 일주일을 보이지 않았다. 죽어서도 성질은 똑같네.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손이 떨리고 겨우 길었던 손톱은 다시 빨간 메니큐어를 바르게 되었다. 이젠, 내가 찾지 않으면 못 볼 존재야.
걘 그런 소리 말라며 고개를 힘껏 젓겠지만, 글쎄. 만성 불안증인가, 미친 건가. 죽은 존재인 걔한테도 휘둘리는 나는, 그냥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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